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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6-04-09 18:18:33
[컬럼]우리 말 살리는 길/한실 최석진
http://www.kppress.kr/news/news_view.php?idx_no=10478 뉴스주소 복사

1. 동강난 겨레가 쓰는 종살이 말(식민지 언어)
오늘날 우리 겨레삶을 한마디로 말하면 ‘동강난 겨레삶’(분단체제)이다. 깡패나라들이 저들 마음대로 겨레와 나라를 둘로 갈라놓고 앞잡이들을 부추겨 우리끼리 죽어라 서로 맞서게 해서 동강난 채로 겨레삶이 이어지도록 다스림(정치)과 살림(경제), 모둠살이(사회), 삶꽃(문화)을 비롯, 겨레 모든 힘과 기운을 서로 맞서게 하는 데에 짜맞춘 삶이 ‘동강난 겨레삶’이다. ‘동강난 겨레삶’에선 깡패나라들이 겨레 안 앞잡이들과 한통속이 되어 어떻게든 겨레끼리 원수가 되어 싸우도록 부추기고 겨레가 하나되는 삶을 가로막는 온갖 생각(사상)과 말(언론)과 꾀(정책)를 지어내어 나라와 겨레를 결딴낸다. 
‘동강난 겨레삶’에서 우리 겨레가 쓰는 말은 종살이말, 줄여서 종말인데, 그 밑바탕은 두 즈믄해(이천년)쯤 이어진 쫑궈가웃종살이(중국반식민지) 동안에 우리말에 야금야금 스며든 쫑궈 한자말이다. 
그러다가 지난 온스무 해(120년) 남짓한 사이, 곧 왜종살이(일본식민지) 동안과 그 뒤 여든 해 사이에, 그 앞에는 조금도 쓰지 않았던 왜말이 우리 겨레말 줄기를 차지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말은 토씨 빼고는 거의 다 왜말을 쓰는 말살이를 한다. 
엎친 데 덮쳐서 지난 여든 해 동안 꼬부랑말(잉글말, 유에스말)이 우리말 속에 물밀듯이 들어와 앞다투어 꼬부랑말을 쓰는 바람에 우리말이 더욱 더럽혀져 어지럽게 되었다. 

2. 왜 우리말이 종살이 말이 되었는가?
일찍이 우리 겨레는 빛나는 삶꽃(문화)과 삶빛(문명)을 꽃피워 이웃 겨레와 나누며 살았다. 그 자취가 옛 배달겨레 삶터(고조선터) 땅속에서 쏟아져 나와 누리에 알려졌는데, 바로 ᄇᆞᆰ달삶빛(홍산문명), 라오허삶빛(요하문명)이라 불리는 삶꽃이다. 이런 빼어난 삶꽃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일했고 서로 사이에 뜻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겨레 옛 삶터에서 파내어져 밝혀진 글자만 하더라도 뼈에 새긴 글자(각골글자), 거북등가죽에 새긴 글자(갑골글자)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겨레가 이 글자들을 우리말을 쉽게 적을 수 있는 데까지 꽃피우지 못했다. 오히려 쫑궈 사람들이 이 글자들을 저네들 말을 적는 한자(전서>예서>혜서)로 꽃피워 거꾸로 우리 겨레가 받아들여 쓰게 된다. 
종살이 서른여섯 해 동안 왜에 건너간 우리 겨레들과 나라 안에 세운 학교에서 왜말을 배운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말에 왜말이 많이 섞여 들었다. 그러나 나라를 되찾았을 때 왜말에 물든 사람은 많아야 열에 둘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라를 찾고 지난 여든 해 동안 배곳(학교)에서 왜말을 으뜸으로 가르치고, 책을 거의 다 왜말로 써내고, 새뜸(신문)과 널냄(방송)에서 왜말을 쓰고, 나라에서 쓰는 말(행정용어)이 다 왜말이고, 더구나 모든 벼리말(법률용어)이 왜말이다 보니, 오늘날 모든 백성이 왜말살이하는 겨레가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왜말이란 한글왜말을 이른다. 한글왜말이란 일본 사람들이 만든 두 글자 또는 세 글자 한자말을 일본말 소리로 읽는 게 아니라 우리말 소리로 읽는 말을 뜻한다. 종살이할 때는 이런 말들을 조선왜말이라 불렀다. 이를테면 자유, 평등, 민주,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운동, 환경 같은 말들이다. 
이런 왜말들을 왜종살이 바로 앞부터 종살이 내내, 또 종살이 뒤 여든 해 동안 엄청나게 들여다 쓰는 바람에 우리말은 차츰 사라져 가고 그 자리를 왜말이 차지하게 되었다. 니혼이 물러가고 유에스싸울아비들이 나라를 주무를(미군정) 때부터 왜에 붙어먹었던 앞잡이들이  유에스에 붙어 다시 힘을 얻어 나라말로 한글왜말을 이어 써 왔고 그 뒤 이승만, 장면, 박정희로 이어지는 누름힘(정권) 동안 내내 우리말을 팽개치고 왜말을 배곳 배움책(학교 교과서)에 잔뜩 실어 가르치고, 나라말로도 내내 왜말을 그대로 이어 쓰면서 왜말이 백성말 줄기로 자리잡아 갔다. 
책을 짓도록 한 배움맡(문교부, 교육부) 일꾼들과 배움집(교육청) 일꾼(공무원)들이 왜 앞잡이였거나 왜말에 물든 사람들이고, 배움책(교과서) 지은이들도 왜말에 물든 사람들이고, 그 책을 배곳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이(교사, 교수)들까지 왜말에 물들거나 주눅이 들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가르침이(선생)들이 나라를 찾은 뒤에도 왜말을 가르치는 부끄러운 짓을 버젓이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깨닫지 못하고 여태까지 이어 오면서 왜말이 우리말 줄기로 자리잡게 하는데 큰 구실을 해 왔다. 이것이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잡았으면 이오덕 같은 분도 ‘우리글 바로 쓰기’에서 “우리는 누구든지 배곳(학교)에 들어가기 앞에 어버이로부터 한뉘토록 쓸 나날말을 거의 다 배웠다. 그러나 배곳이란 곳에 들어 가서는 집에서 배운 말과는 바탕이 다른 얼개 말을 익혀야 했다. 그래서 어버이한테서 배운 말을 부끄럽게 여기고 잊어버리게 하는 갈닦기를 오랫동안 받았다. 배곳뿐 아니라 모둠살이(사회)에 나와서도 그랬다. 나 혼자 지난날을 돌아보면 어렸을 때 배운 어미말을 배곳과 모둠살이에서 끊임없이 빼앗기고, 또 스스로 짓밟으며 살아왔음을 나이가 예순이 훨씬 넘은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고 썼다. 이어서 “나는 아이들에게 아이들 말을 못 하게 하고 어른말, 글말만을 하도록 길들이는 배움(교육)이 우리말 모두를 앓게 하고, 우리 겨레 마음을 앓게 하고 우리 말꽃이며, 갈(학문)이며, 다스림이며, 지난 삶 모두(역사 전체)를 앓게 하는 뿌리가 되었다고 본다”고 하였다. 
이렇게 나라를 찾았을 때 우리말을 오롯이 찾아 우리말살이를 하려던 깨친이와 백성들, 곧 아래로부터 치솟던 우리말살이 기운(이를테면 새 사리갈말 말광을 지은이들과 같은 움직임)이 깡패나라들과 그 앞잡이들한테 꺾이면서 왜말살이로 되돌아가고 박정희가 다시 일으킨 쿠데타(유신독재) 뒤로는 아예 내어놓고 왜말을 모든 배움책(교과서)에 되쓰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우리말 책은 자취를 감췄다. 이 흐름은 오늘에까지 이어져 그새 여러 다스림힘(정권)이 바뀌었지만 왜말에서 벗어나려고 거의 아무도 힘쓰지 않았으니 우리 겨레 말살이가 왜말살이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유에스싸울아비(미군)들이 잠개(무기)를 들고 이 땅을 차지하면서 백성들로서는 나라 찾은 기쁨도 잠깐뿐이었다. 그들이 이 땅을 다스리면서 그위말(공용어)로 유에스말(영어)을 쓰게 된 뒤부터 오늘날까지 유에스말, 곧 잉글말(영어)은 이 땅에서 누구나 배워야 하는 말로 자리 잡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못 익혀서 안달이다. 이 흐름은 갈수록 더해져 이제는 갓난애한테까지 겨레말은 못 익히더라도 잉글말을 먼저 익혀야 한다며 아이노래까지 잉글말로 들려주는 얼빠진 겨레가 되었다. 우리가 유에스 종살이한다는 걸 한마디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모든 재봄(시험), 한배곳재봄(대학시험), 벼리보재봄(변호사시험), 좋은 일자리에 들어가는 재봄에도 잉글말(영어)을 잘해야 들어간다. 우리가 거꾸로 된 말살이를 하는 말미(원인)이며 열매(결과)이다. 
어쩌면 배달말을 잘하는 사람부터 서울한배곳(서울대)에서 뽑아주고 겨레말 잘하는 사람에게 가름보(판사)와 걸보(검사)를 시켜주고, 우리말 잘하는 사람부터 좋은 일자리에 뽑아준다면 모두가 앞다투어 우리말을 배우려고 머리를 싸매고 덤벼들 것이다. 오늘날 우리 겨레가 얼마나 줏대 없이 살고 종 말살이에 물이 들어 겨레 얼을 잃고 살아가는지를 드러내는 보기이다. 
우리가 잉글말로 종살이 말을 하도록 부추기는 큰 올가미가 ‘누리되기(세계화)’란 그럴듯한 속임수인데, 이 속임수에 웬만하면 거의 다 넘어간다. 누리(세계)로 뻗어가려면 잉글말을 쓸 수밖에 없고 누리사람들과 겨루려면 잉글말을 잘해야 한다면서 사람들을 제법 속여넘긴다. 마치 니혼이 1941해에 유에스 참구슬구미(진주만)를 치면서 온누리를 집어삼킬 듯이 뻗어갈 때,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외칠 때처럼, 마지막 몸부림같이 느껴진다. 
잉글말이 물밀듯 들어와 이것을 먼저 배운 사람들이 겨레말은 잘 모른 채, 알더라도 왜말이 우리말인 줄 잘못 알아, 우리말로 뒤치거나 다듬는다면서 어리석게도 다 왜말로 뒤치거나 다듬는다. 그러니 잉글말을 좀 아는 사람들은 아예 잉글말로 갈을 하고 뜻을 나누고 이것을 나날말에도 끌어다 쓰면서 겨레말이 아주 빠르게 꼬부랑말에 물들어 어지럽혀진다. 
이것을 앞장서 하는 곳이 배움맡(교육부)과 배움집(교육청)이고, 그것을 뒤따라 하는 이들이 가르침이(교사)들이다. 옛날에 왜말을 퍼뜨리고, 가르치고, 길들이던 사람들이 배움맡 사람, 배움집 사람, 가르침이들이었듯이 오늘날 잉글말을 파뜨리는 일에 앞장선 이들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그 맨 앞에 선 이들이 유에스나 잉글나라 같은 곳에 나가서 배우고 온 얼뜨기가르침이(교수)들이다. 이들이 겨레말에는 눈이 어두우니 배운 대로 어설픈 잉글말을 그대로 배움이들에게 퍼뜨리고 이것을 받아 배움맡(교육부)이나 배움집(교육청) 일꾼들이 배곳으로 내려 먹이고 마지막에 가르침이들이 배움이들에게 설익은 잉글말을 퍼뜨려 조금씩 우리말을 잡아먹으며 자리잡도록 한다. 갈(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 쪽(분야)이든 참말로 스스로 파고드는 갈(학문) 속내를 훤히 안다면 쉬운 우리말로 나타내지 못할 까닭이 없다. 어려운 한자말을 쓰든가 어설픈 꼬부랑말을 지껄인다는 것은 아직 따라 외울 수는 있지만 훤히는 모른다는 뜻이다.
맨 아래쪽에 우리 겨레말이 있다. 우리말은 예로부터 어릴 적에 살아가면서, 놀면서, 일하면서 배운 삶말이다. 할머니 무릎에 앉아 배우고 어머니 등에 업혀 배우고 언니들 따라다니면서 놀면서 배운 말이다. 가장 낮은 곳에 살던 백성들, 그 가운데도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꽃님들인 할머니, 어머니, 누나, 누이들이 쓰며 지켜온 말이다. 겨레말이며 어미말이며 한아비말이며 배달말이다. 가장 못 배운 사람이 쓰는 말이 오롯한 우리말이다.
그 위에 한자말이 있다. 배곳(학교)에 가서 배우는 글과 말이다. 두 글자나 세 글자, 한자로 된 말로 다 일본말에서 들어온 말이다. 말하자면 한글왜말이다.
맨 위에 꼬부랑말, 유에스말, 곧 잉글말(영어)이 있다. 오늘날 엄청나게 빠르게 우리말과 왜말을 밀어내며 안방 차지해 가는 말이다. 왜말 앞잡이들이 왜말을 퍼뜨리고 우리말에 끌어들였듯이 유에스 앞잡이들이 똑같이 잉글말을 퍼뜨리고 우리말에 끌어들인다. 오늘날 말꾼(스피커)들이 잘난 체하며 앞장서 저지르는 잘못이고 이 말을 듣는 아이들, 배움이들 말이 더럽혀지는 으뜸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말이 세켜 말이 되었다. 옛 종말에 새 종말까지 곁들여 세켜 말로 된 종말을 쓰는 슬픈 겨레가 되었다.
 
3. 거룩한 우리 배달말.
우리 겨레 글살이를 우리글(한글)만 쓸 거냐, 한자를 섞어 쓸 거냐를 두고 쉰 해 넘게 다퉈 오던 일은 오늘날 온 나라 거의 모든 사람이 우리글로만 오롯이 글살이를 하게 됨으로써 헛된 실랑이를 해온 셈이고, 한자를 섞어 써야 하고 그래서 한자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우기던 사람들이 온통 엉터리였음도 환히 밝혀졌다. 그래서 새뜸(신문)이든, 배움책이든, 한배곳책(대학 교재)이든 새카만 한자가 사라지고,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한글살이가 온겨레 글살이에 자리잡았다. 처음 지은 뒤로 우리글이 오늘날처럼 널리 온 백성한테 두루 쓰인 적이 일찍이 없었다. 게다가 손말틀이 나온 뒤로는 우리글이 날개를 단 느낌이다.
그런데 마냥 기뻐할 일만도 아닌 것이, 겉으로 보면 우리 글살이를 하니 우리말을 잘 지켜온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말은 이제까지 있어 본 적 없는, 가장 바드러운(위태로운) 자리에 놓였다. 마치 바람 앞에 놓인 작은 호롱불 같다. 한마디로 우리글은 살아났는데, 그새 우리말은 죽어갔다. 우리글이 종요로운 것은 우리말을 쉽게 잡아둘 수 있는 연장이기 때문인데 우리 얼이 깃든 우리말을 잃었으니 붙든 글은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말은 우리 겨레 삶 처음서부터 뭇사람들이 지어내고 다듬고 갈고 닦아 오늘에 이르렀다. 말은 어디까지나 입말이 바탕이다. 그래서 우리글이 없던 오랫동안에도 우리말은 끊어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한자말이 처음에는 우리말 소리나 뜻을 적어두던 연장에 지나지 않았는데, 한자를 배운 이들이 슬금슬금, 야금야금, 이 글말을 입말로도 씀으로써 우리말에 한자말이 섞여 들어왔다. 우리 겨레는 한자말이든 다른 바깥말이든 겨레삶을 넉넉히 하려고 우리 겨레말에 없던 말을 받아들여 우리말로 녹여 써왔다. 호미, 메주, 말(타는), 빵, 가마니, 가방 같은 말들이 그러하다.
이와 달리 한자말로 남아있는 말은 우리말을 잡아먹고 그 자리를 차지한 말이다. 이를테면 강, 산, 천, 만, 남, 녀 같은 말이 그러하다. 그래서 모든 가람 이름, 내 이름, 메 이름, 들과 벌 이름, 절 이름, 마을 이름, 고을 이름, 고장 이름이 다 한자말에 잡아먹혔고 드디어는 사람 이름까지 한자말이 꿰찬 지 오래되었다. 참으로 슬프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우리말을 업신여긴 우리 겨레가 얼마나 못났으면 사랑하는 아들딸 이름조차 제 겨레말로 지어 부르지 못할까? 이름에 봄 춘, 비 우를 쓴 ‘춘우’라는 이름이 제법 많은데 춘우야, 춘우야 하고 한 해 내내 부르는 것보다 봄비야, 봄비야, 몇 디위(번)만 불러도 봄비란 말이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진다. 우리말에는 우리 얼이 깃들어 있고, 우리 얼이 깃든 말은 우리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우리 얼을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어버이로부터 물려받지만, 우리 얼은 우리말에서 물려받는다. 우리 얼이 깃든 뜻깊은 우리말이 아무도 쓰지 않아 사라져 간다.
말이 갖는 깊은 뜻으로 보면 우리말에 훨씬 못 미치는 한자말이나 하늬말(잉글말, 프랑스말, 도이치말 따위)을 우러르느라 오늘날에도 배운 사람, 높은 자리 사람들이 앞다투어 한자말, 하늬말을 즐겨 쓴다. 입말로도 많이 쓰지만 갈글(논문, 학위논문)에 이르면 온통 한자말과 하늬말뿐이다.
우리 얼이 깃든 우리말을 살려 써 가꾸는 일은 바로 겨레 얼을 간직하고 이어가는 일이다. 새로 태어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우리말을 배워 익혀 쓰고 그 아이들이 모든 갈말을 우리말로 해가도록 하려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어른들이 나날살이 모든 말마디에서 우리말을 써 갈 일이다.
2) 우리말이 지닌 깊은 뜻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자는 뜻이 깊은 뜻글자이고 우리글은 소리글자여서 소리만 적는다고 알고 있다. 맞는 말이지만 소리대로 적는 것은 우리글이고 그런 소리가 나는 우리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깊은 뜻을 지닌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우리말 ‘사람’은 ‘살다’ 줄기 ‘살’에다 이름꼴을 만들 때 쓰는 ‘암’을 붙여 살암 → 사람이 된 말이다. 마치 달리다 옛말 ‘닫다’ 줄기 ‘닫’ + 암 + 쥐 → 닫암쥐 → 다람쥐가 되듯이 말이다. 쥐가 다 달리지만 다람쥐는 그저 ‘달리는 쥐’라는 뜻을 넘어 ‘쥐 가운데 가장 잘 달리는 쥐’라는 뜻이다.
그렇듯이 사람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란 뜻을 넘어 살아가는 목숨 가운데 ‘가장 잘 사는 목숨붙이’란 뜻이다. 곧 우리말 ‘사람’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인지를 살피면서 그저 잘 먹고 잘사는 걸 넘어서 마음이 고요하고 흐뭇하게, 나아가서 모든 사람이 고루, 두루, 흐뭇하게 잘 사는 길을 살펴서 살아가는 목숨’이란 뜻이다. 
사람을 뜻하는 말은 인, 인간, 인민, 시민, 민중, 국민, 민초, 맨, 휴먼, 피플... 같은 여러 말이 있지만, 우리말 ‘사람’만큼 깊은 뜻을 가진 말이 있을까? 그러므로 인간이니, 인민이니, 국민이니, 시민이니, 민중이니 이런 말을 쓰기보다 사람이란 말을 그 깊은 뜻을 새기며 더 자주, 더 널리 써가면 좋겠다.
우리말 ‘고맙다’는 ‘곰답다’에서 왔는데, 곰 옛말은 ᄀᆞᆷ이다. ᄀᆞᆷ에서 검, 감, 곰, 굼 같은 소리가 갈라져 나온다.
우리 겨레는 하늘에 계신 님(환인)이 그 아들을 이 땅에 내려보내 우리 겨레를 다스렸다고 믿었다. 하늘이 온 누리를 비춰 따뜻하게 해주고, 비도 내려주고, 바람도 불어 주어 우리를 살려준다고 보았다.
또 땅은 우리에게 살 터전을 마련해주고 온갖 낟(곡식)과 나물, 남새로 우리를 먹여 살린다고 보았다, 이 땅서낭(지신)을 ᄀᆞᆷ으로 여겼다. 그래서 하느님 아들(환웅)이 그 짝을 찾아 굴속에서 온날(백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견딘 ᄀᆞᆷ을 아내로 맞아 그 아들, ᄇᆞᆰ달임금(단군)을 낳아 ᄇᆞᆰ달임금이 우리 겨레를 다스렸다고 믿었다. 여기서 땅서낭이 ᄀᆞᆷ인데, ‘고맙다’라는 말은 당신은 나한테 나를 먹여 살려주는 땅서낭(지신)인 ‘곰과 같은 분이다.’ = ‘고맙다’이다.
얼마나 깊은 뜻이 깃든 말인가?
이런 거룩한 말을 업신여기고 마음은 없고 입술만 자주 달싹여도 되는 감사하다, 감사하다, 같은 말을 더 많이 한다. 그런데 거꾸로 윗사람한테는 고맙다고 말하면 버릇없고 감사하다고 말해야 바르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겨레는 참말로 고마울 때는 말을 못 하고 얼굴 살짝 붉히며 웃음만 지으며 마음을 보낼 때가 있다.
살림이란 우리말은 왜말 경제가 들어오기 앞만 해도 안살림, 집안 살림, 나라 살림, 살림살이처럼 널리 썼고, ‘살림을 할 줄 아나?’ ‘작은아들 살림 내줬나?’ ‘안살림을 잘해야 집안이 일어난다.’처럼 썼다. 굳이 말풀이를 하지 않아도 살림(경제)은 ‘살리는 일’이다.
우리 겨레는 다른 목숨을 죽이면서 사람만 살리는 걸 살림이라 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땅별(지구) 곳곳을 까부수고 파헤쳐 길을 쓸데없이 넓게 내고 굴 뚫고 물길 막아 뭇목숨을 죽이는 일이 우리 겨레한테는 살림이 될 수가 없다. 온갖 목숨을 두루 잘 살릴 때, 살림이라 해야 맞지 싶다. 그러므로 오늘날 왜말로 ‘녹색경제’라 하는 것이 우리말 ‘살림’이다.
우리 겨레가 먼 옛날 한아비들이 빛나는 삶빛과 삶꽃을 꽃피워 이웃 겨레에게 두루 나눠 주었듯이, 오늘날에도 우리가 먼저 삶빛과 삶꽃을 꽃피웠더라면 우리 겨레말이 온 누리에 알려졌을 테고 그러면 오늘날 이코노미(경제)란 말을 갈음하여 ‘살림’이란 말이 온 누리에 두루 퍼졌을 것이고 그랬으면 날씨고비(기후위기)라든가 숯남없앰(탄소중립)과 같은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되는 온 누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말마디마다 깊은 뜻을 지닌 우리말을 살려내어 써 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오늘날 폴리틱스(정치)라 하는 말을 우리 겨레는 다 ᄉᆞᆯ이다/ 다 ᄉᆞᆯ오다 → 다스리다 라고 말했다. ‘ᄉᆞᆯ이다/ᄉᆞᆯ오다’ 뿌리말은 ‘사르다’ 옛말인 ‘ᄉᆞᆯ다’ 인데, ‘ᄉᆞᆯ다’는 ‘불에 오롯이 남김없이 태우거나’ 또는 ‘물에 오롯이 남김없이 녹인다’라는 뜻이다. 사르면 재도 남지 않는다. 
우리 겨레는 ‘다스림’을 ‘(다스리는 이가) 스스로 남김없이 살라서 ‘사람들’(백성, 국민)을 섬겨 사람들을 두루 고루 잘 살리는 것’으로 보았다. 
‘다스리다’가 얼마나 거룩한 뜻을 지닌 말인가? 이런 말을 지어 쓸 줄 알았던 겨레 마음이 얼마나 거룩한가? 겉으로는 사람들을 섬긴다면서 속으로는 거짓말하며 제 잇속 차리는 ‘정치’를 하지 말고 ‘다스림’을 하는 ‘섬김이’가 줄줄이 나와 우리 겨레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겨레를 섬겨 바르게 이끌어 주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3) 더 살펴볼 우리말 이야기.
노마리나(충북) 청원고을(군) 소로마을에서 온 누리에서 가장 앞선 벼 여름지이(벼농사)한 볍씨가 나오기 앞만 해도, 온 누리에서 가장 앞선 벼지이는 쫑궈 후난(호남)성 양쯔가람가로 알려져 있었다. 이제부터 11,000해 앞서 벼여름지이를 했다는 자취가 가장 오랜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여기서 한 갈래는 니혼을 거쳐 우리나라로 흘러오고(이것을 자포니카라 부름) 또 한 갈래는 새마(동남) 아시아를 거쳐 인디아로 흘러갔다(이것을 인디카라 함)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소로마을에 ‘갈두럭(과학단지)’를 마련한다고 파헤치다 옛사람 삶 자취를 찾아내고 그곳을 꼼꼼히 살펴본(발굴한) 바 놀랍게도 여기서 59알 볍씨를 찾아내고 이것을 서울대와 유에스 해봄방(실험실)에서 숯남같은자리 밑숫(탄소동위원소)으로 재보니 이제까지 알려진 쫑궈 양쯔가람가보다 적어도 1,300해 앞선 것으로 밝혀졌다. 잉글땅(영국) 비비씨(BBC)를 비롯, 온누리 새뜸(신문)과 널냄(방송)이 이 일을 크게 알렸고 온 누리에서 가장 일찍 벼여름지이를 한 곳이 바로 우리 배달땅이란 것이 밝혀졌다.
그런가 하면 우리 말에는 임금이 살아도 집, 벼슬아치가 살아도 집, 거지가 살아도 그냥 다 같은 집이다. 그런데 중국 한자말에는 집궁, 집궐, 집신, 집전, 집옥, 집댁, 집가, 집방, 집청, 집해, 집려, 집사, 집실, 집당, 집각, 집누, 집주, 집우, 집하, 집원처럼 우리말로 집으로 새기는 글자가 훈몽자회에 올려져 있는 것만 대충 잡아도 스무 자나 된다.
이것을 보면 누리 짜임새랄까, 누리흐름을 살필 때는 우리 겨레가 대단히 찬찬하고 꼼꼼하게 살펴서 그 하나하나에 걸맞은 말을 지어 썼음을 알 수 있겠고, 그러나 사람살이가 두루 골라서 아래위가 다 함께 잘 살지 않았나 싶다. 누가 살더라도 사람 살림살이하는 곳을 다 통틀어 집이라 불렀으니까!
또 어떤 이들은 우리 말에는 그림씨와 어찌씨는 넉넉하나 이름씨가 모자라 한자말이 그 모자람을 채워주고, 그래서 한자말을 배워야 하고 한자말을 당장 버리면 말글살이를 못 한다고 울상짓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우리말집(사전)을 펼쳐봐라, 그러면 열에 여섯, 일곱이 한자말이고 우리말은 많아야 열에 서넛밖에 안 된다, 그래서 말글살이를 넉넉하게 하려면 한자를 배워야 하고 한자말을 써야 한다’라고 우기기도 한다.
참은 어떠할까?
첫째 어떤 말에 어찌씨 그림씨는 넉넉한데, 이름씨만 모자라는 그런 말은 있을 수가 없다. 참(진실)은 그 많은 이름씨는 한자말로 적어놓다 보니 한자말에 잡아먹혀 죽어간 거다. 알록달록, 옥신각신, 불그죽죽 같은 말은 한자로 적을 수 없으니 아무리 한자말이 잡아먹으려 해도 잡아먹을 수 없어 살아남은 말이라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둘째 ‘우리말집(사전)에 올라가 있는 말 가운데 열에 일곱은 한자말이다’ 라고 하는데 이거 맞는 말이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느 사람들이 도무지 쓰지 않는 얼토당토않은 한자말을 잔뜩 올려놓고 정작 백성들이 널리 써서 올려놓아야 할 우리말은 엄청 많이 빼먹었다. 이 말들을 하나하나 챙겨 올려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들을 속이는 그릇된 말이다.
또 대중말(표준말)이라는 것을 잡을 때 ‘서울 여느 집(중류 가정)에서 쓰는 본데(교양) 있는 말’->‘본데 있는 사람들이 쓰는 요즘(현대) 서울말’이라고 솥뚜껑으로 쥐 잡듯이 엉성하고도 어설프게 매겨놓고 고장마다 여러 사람이 널리 쓰는 말을 모두 ‘사투리’로 몰아서 내던져 버렸다. 사투리란 말부터 업신여기는 말이고 고장마다 보듬어 온 아기자기한 아람삶을 나타내는 온갖 말을 한칼에 사투리로 몰아 내친 이 말들을 다 찾아 말집에 올림말로 올려 살려내야 하는데, 이런 일을 해 놓은 곳이 글쓴이가 지은 푸른배달말집이다.
이제 우리 백성들이 몇몇 웃대가리들이 제멋대로 저지른 갖은 잘못을 되돌아볼 만큼 깨어나고 힘을 가졌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일들을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4. 우리말을 어떻게 살려갈까?
우리말을 뿌리에서 제대로 살려내려면 ‘동강난 겨레삶’(분단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강난 겨레삶으로는 우리 겨레 앞날이 두루 널리 펼쳐질 수 없다. 못된 바깥힘(외세)과 그 앞잡이들이 겨레 온 힘을 겨레끼리 맞서는 데에 쓰도록 하는 이 동강난 겨레삶을 송두리째 부숴버려야 겨레가 하나로 이어지고 아람(백성)이 임자 되는 나라를 세울 수 있다. 그래야 옛 종말과 새 종말을 쓰도록 부추기는 온갖 거짓놀음과 속임수가 통째로 사라지고 배달말을 제대로 되찾아 쓰는 겨레말살이가 펼쳐질 수 있다. 이를테면 제대로 된 나라라면 ‘배달말바탕벼리’(배달말기본법)를 지어 프랑스 같은 나라처럼 나라말을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들을 호되게 다스리면 왜말살이하는 앞잡이들과 꼬부랑말살이하는 앞잡이들이 거들먹거리기는커녕 하루아침에 힘을 잃고 주저앉을 뿐만 아니라 갓난애한테까지 잉글말 노래를 가르치는 이 얼빠진 짓거리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온 겨레가 겨레말살이하는 앞날을 그리며 또 그런 앞날을 앞당기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이제부터 곧바로 우리말을 살려 써 가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말이 놓인 자리를 다시 꼼꼼하게 살펴봐야겠다.
우리 겨레가 마땅히 우리말로 말글살이를 해가야겠지만, 앞에서 살펴봤듯 억눌리고 뒤틀리고 구부러진 겨레삶을 살아오는 사이에 우리말에 섞여 들어온 한글되말, 한글왜말, 한글하늬말(서양말)이 오히려 우리말 줄기를 차지하고 우리말은 갈수록 줄어들어 잔가지에 지나지 않는 우리 겨레 종 말살이를 똑바로 보고 이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우리말을 이렇게 헐벗게 한 으뜸은 한글왜말이다. 배곳(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 한글로 쓰고 말하는 거의 모든 말이 우리말이 아닌 한글왜말이고, 그래서 이제 한글왜말이 우리말인 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조차 꽤 많다. 이를테면 주방은 왜말이고, 부엌은 배달말이듯이, 고객은 왜말이고 손님은 우리말이며, 출발하다는 왜말이고, 떠나다, (집)나서다는 겨레말이다. 마찬가지로 감사하다는 왜말이고 고맙다는 우리말이며 국어는 왜말이고 나라말은 배달말이다. 
그러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사상, 세계, 지혜, 우리가 나날살이에서 입 열어 내뱉는 거의 모든 말마디가 한글왜말이다. 
그러면 뭐가 우리말일까?
다스림(정치), 살림(경제), 사람들(사회), 삶꽃(문화), 배움(교육), 생각(사상), 누리(세계), 슬기(지혜) 같은 말이 우리말이다. 우리말로 말글살이를 하려면 서른여섯 해 왜종살이 동안 배워 익혀 물들고, 종살이를 벗어나 여든 해 동안 더욱 깊이 물든 왜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말을 되찾아 살려 쓰고, 죽어가거나 이미 사라진 우리말을 살려내고, 우리말에 없는 말, 새로 들어오는 말을 우리말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 써 가야 한다. 
하늬녁(서양)에서 들어온 새 말들을 종살이 앞뒤로 왜를 거쳐 받아들이면서 바탕이 넉넉한 우리말로 새로 지어 쓰지 못하고 왜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씀으로써 우리말로 갈고닦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이런 한글왜말은 하나하나 우리말로 새로 지어 써야 한다. 
삶터 곳곳에서 이런 일을 해가는 분들이 늘어난다. 이 일에 앞장선 이가 바로 백기완님과 빗방울 김수업님이다. 빗방울님 말씀이 ‘목에 가시같은’ ‘문학’이란 왜말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어떻게 말꽃이란 배달말로 빚어냈는가 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우리가 모두 저마다 삶밭에서 익숙하게 쓰는 왜말을 빗방울님처럼 목에 가시처럼 여기고 두고두고 배달말로 지어내려고 애쓴다면 못 바꾸어 낼 왜말이 한마디라도 있겠는가? 
온 누리엔 다시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이 새 물결은 어마어마한 새말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우리 겨레가 온갖 우리말을 넉넉히 부려 쓸 뿐 아니라 우리말로 새말을 뒤쳐 쓰지 못하면 이 새말들을 하늬말 그대로 들여다 쓰거나 기껏해야 한글왜말에 덧붙여 쓰거나 왜말짝퉁을 지어 쓸 수밖에 없다. 하늬말이나 바깥말(외국어)이더라도 우리 겨레 말살이를 넉넉하게 해주는 말은 이를테면 카드, 버스 같은 말은 들온말로 받아들여 써도 좋겠다. 우리 겨레는 일찍부터 메주, 호미, 사둔, 빵 같은 들온말을 우리말로 받아들여 써 왔다. 
사람 이름을 우리말로 해야 한다. 
우리말을 살려갈 쪽(방면)은 수두룩하다. 맨 먼저 사람 이름부터, 저마다 제 이름부터 우리말로 바꾸면 좋겠다. 깊이 살펴보면 서러운 마음마저 든다. 얼마나 못난 겨레면 제 이름조차, 아니 사랑하는 아들딸 이름조차 제 겨레말로 지어주지 못하는 겨레가 되었던가? 마녁(남녁)만 그런 게 아니라, 노녁(북녁)도 한결같이 한자말 이름을 지어 쓰는 것을 보면, 우리 겨레한테 한자 굴레가 여태까지 얼마나 끔찍한 짐이었으며 앞으로도 두고두고 짐이 될지 알고도 남을 만하다. 
온 겨레가 한자말 이름을 버리고 배달말 이름을 새로 지어 쓰는 날을 앞당겨야겠다. 이것을 자꾸 한글 이름이라고 부르는데, 잘못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춘우라 써도 한글이름이고, 봄비라 부를 때 우리말 이름이다. 말과 글은 하늘과 땅처럼 달라, 오늘날 한글로 쓴 모든 왜말이 우리말이 아닌데도, 한글 사랑한다는 사람들조차 버젓이 왜말을 쓰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도 말과 글을 가릴 줄을 몰라 헷갈린 데서 비롯한다. 제가 지어준 우리말 이름 보기를 들어 보면; 봄, 보리, 보라, 여름, 가을, 샛돌, 밝음이, 해맑음, 달, 달밝음, 열매, 구슬, 한메, 온터, 느티, 슬기, 으너리, 보름, 솔, 여울, 누리, 나루, 바다, 한밝음...같은 고운 말이다.
마을이름을 우리말로 하자
우리가 사는 마을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마을 이름이 한자말로 되어 있고 끝이 동이나 리로 끝나면 이것이 바로 왜 종살이 찌꺼기(일제잔재)이다. 제가 사는 마을 이름과 가까운 마을 이름이 선돌박이, 새터, 넉(넙)바우, 진데미인데 입석리, 신기, 덕암, 장담으로 종살이할 때 이름도 함께 쓴다. 
마을 이름을 죄다 옛 우리말로 되찾으면 좋겠다. 마을 이름은 한자말로 바뀐 마을 이름도 있지만, 우리말 옛 이름이 남아있는 곳도 많아 조금만 애쓰면 거의 되찾을 수 있다. 
우리말은 소리가 물 흘러가듯 매끄럽다. 한자말 소리는 딱딱 끊어져 들으면 마음이 좀 갑갑한데 우리말은 흘러가는 물소리, 불어오는 바람소리 같다. 춘우, 입석, 신기, 덕암, 장담이라 소리내고 봄비, 선돌박이, 새터, 넙바우, 진데미라 부르며 그 느낌을 견줘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나라 이름
우리나라 이름을 우리말로 지으면 참말 멋질 것이다. 고구려, 고려, 조선에 쓰인 나라 이름 뜻을 살펴보면 밝고, 높고, 아름답고, 곱고, 아침 이런 말들이다. 그래서 아름나라, 아침나라, 배달나라, 빛나라, 해나라 같은 우리말 이름 가운데 하나를 고르든가 더 좋은 우리말 나라 이름을 온 백성이 함께 슬기를 모아 새로 지어 불렀으면 좋겠다. 글쓴이는 아침, 아름, 배달, 빛, 해 어느 것이라도 한자말 나라이름 보다는 훨씬 좋다. 
오늘날 마(남)녘은 대한민국, 한국이라 부르고 노(북)녘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이라 부르는데 낡은 한자말 나라 이름을 버리고 우리말 새 이름을 지어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으뜸벼리(헌법)와 모든 벼리(법률)를 배달말로 짓는다
참으로 종요로운(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백성이 임자인 우리나라는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참 임자로서 홀로 서서 스스로 다스려간다. 그러려면 백성을 섬기는 바탕이 되는 벼리(법, 법률)를 우리 백성 모두가 스스로 나서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슬기를 모아 으뜸벼리(헌법)부터 비롯하여 모든 벼리를 쉬운 우리말로 지어내야 한다. 이것을 벼리꾼들(법률학자, 판사, 검사, 변호사)이나 뽑힌이(국회의원)들에게 맡겨두던 낡은 틀에서 벗어나 온 백성이 함께 벼리를 지어 빛나는 새누리를 일구어내야 한다. 

5. 겨레말살이
- 아래로부터, 나부터 겨레말살이에 앞장선다
먼저 겨레말에 눈뜬 사람부터 스스로 말살이를 바로잡는다. 왜말과 꼬부랑말을 쓰지말고 나날살이말에서 겨레말을 써버릇하여, 하고싶은 말을 겨레말로 마음껏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다보면 저절로 겨레말살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 말을 들으면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 겨레말로 된 좋은 글을 여러 사람이 읽도록 널리 알린다
‘배달말꽃’, ‘말꽃타령’, ‘우리말은 서럽다’, ‘푸른배달말집’, ‘우리말사랑’, ‘소월’이나 ‘동주’ 노래(시) 같은 책을 널리 읽히도록 한다. 뜻있는 사람들이 책을 사서 보내준다. 눈뜬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어 우리말을 살려 써 간다.
-내 이름부터 겨레말로 바꾸고, 다른 사람 이름도 바꾸도록 힘쓴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 배달말로 이름짓도록 한다.
나날말살이에 왜말이나 꼬부랑말을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곧바로 바로잡아 준다. 
-배달말에 눈뜬이들이 오롯이 배달말로 글을 쓰고 책을 엮어 왜말과 꼬부랑말이 판치는 엮음삶꽃(출판문화)를 바룬다.
-겨레말살이를 하면 생각을 겨레말로 하고 꿈도 겨레말로 꾸고 겨레 얼이 살아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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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기자 ( ) 다른글 보기 alps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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